미코리안 쉽게 읽는 고전
광문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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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은 종로 장터를 다니며 구걸하던 사람이었다. 함께 지내던 아이들은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 거처를 지키게 했다. 몹시 춥고 눈비가 내리던 날, 아이들이 먹을 것을 얻으러 나갔지만 병든 아이 하나는 남았다. 앓는 소리가 가엾게 들려 광문도 직접 먹을 것을 구하러 나섰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사정을 모르고 광문이 죽였다고 의심하여 때리고 쫓아냈다.
광문은 밤중에 마을의 한 집으로 몸을 피했다가 도둑으로 붙잡혔다. 그는 원수를 피해서 들어왔을 뿐이라고 서툴지만 꾸밈없이 설명했다. 집주인은 도둑 같지 않다고 생각해 새벽에 풀어 주었다. 광문은 떠나며 낡은 거적 하나를 얻었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뒤를 따라가 보니, 아이들이 수표교 아래로 버린 시신을 광문이 거적으로 싸고 있었다. 그는 시신을 서쪽 교외로 지고 가 묻어 주며 울었다. 주인이 내력을 묻자 그제야 앞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주인은 광문의 마음을 좋게 여겨 집으로 데려가 옷을 주고 잘 대접했다. 이어 부유한 약방 주인에게 그를 추천하여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한동안 지난 뒤 약방에서 돈이 없어졌다. 주인은 밖으로 나가다 돌아와 자물쇠를 살피고, 광문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기를 거듭했다. 광문은 까닭을 알지 못한 채 말없이 지냈다. 며칠 뒤 주인의 처조카가 찾아와, 주인이 없어 자신이 먼저 가져갔던 돈을 돌려주었다.
의심이 잘못되었음을 안 약방 주인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그러고는 아는 사람마다 광문의 사람됨을 알렸다. 이야기는 상인들에서 높은 집안의 손님과 벼슬아치들의 주변으로 옮겨 갔고, 몇 달 사이 서울에 널리 퍼졌다. 광문의 믿음은 거래에서도 힘을 얻었다. 보통 돈을 빌리려면 물건이나 문서를 맡겨야 했지만, 광문이 보증하면 그런 담보를 따지지 않을 만큼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광문은 꾸민 말로 사람을 사로잡는 인물이 아니었다. 생김새를 두고 놀림받기도 했고 헌 옷을 입고 다녔지만, 다툼을 웃음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옷을 벗고 끼어들어, 말 대신 몸짓과 땅에 그은 선으로 시비를 가리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이 웃고 싸우던 이들까지 웃으면 다툼은 풀렸다. 마흔이 넘어서도 혼인하지 않은 그에게 장가를 권하자,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여자도 마찬가지라며 자기 모습을 돌아보았다. 집을 마련하라는 말에는 낮에는 장터를 다니고 밤에는 사람들 집에 머물 수 있으니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했다.
한번은 이름난 기생 운심의 집에 여러 사람이 모여 노래와 춤을 청했지만, 운심이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광문은 밤에 그곳을 찾아와 낡은 차림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못마땅해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무릎을 치며 가락을 맞추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운심이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칼춤을 추었다. 좌중은 함께 즐거워했고, 사람들은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본편은 이렇게 그의 사람됨이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으로 끝난다.
뒤에 덧붙인 이야기에서 박지원은 젊어 병을 앓을 때 사람들이 들려준 광문의 일화를 글로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 무렵 광문은 남쪽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얻었고, 오랫동안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절에서 스님들이 광문을 칭찬하는 말을 들은 거지아이가 자신이 광문의 아들이라고 거짓말했다. 스님들은 광문을 생각하여 아이를 훨씬 정성껏 대접했다. 그 고장에서는 한 사람이 몰래 역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보고 광문의 명성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여 끌어들이려 했다. 아이에게 자신을 작은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자신도 광문의 동생이라고 나섰다.
그러나 평생 홀로 지낸 광문에게 갑자기 장성한 아들과 동생이 생겼다는 말을 수상히 여긴 이가 있었다. 일이 관청에 알려져 광문까지 함께 붙잡혔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조사하자 애초에 모르는 사이임이 드러났다. 일을 꾸민 사람은 죽임을 당하고 아이는 귀양을 갔으며, 광문은 풀려났다. 서울에서는 그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나와 며칠 동안 장터가 빌 정도였다. 스스로 명성을 구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그 이름 때문에 위기가 닥쳤던 것이다.
오랜 세월 뒤에 만난 사람들과 광문은 지난날의 일을 주고받았다. 예전에 알던 이들은 세상을 떠나거나 높은 자리에 올랐고, 새로 이름난 사람들도 있었다. 한때 큰 부자였던 표철주는 이제 가난하여 집을 중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이제야 세상 인심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광문은 목수 일을 배울 무렵에 눈이 어두워진 셈이라는 익살로 답했다. 광문의 몸도 늙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과 말의 재치는 남아 있었다. 그 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문집총간 · 연암집 권8
廣文者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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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文者。丐者也。甞行乞鍾樓市道中。群丐兒。推文作牌頭。
使守窠。一日天寒雨雪。群兒相與出丐。一兒病不從。旣而兒寒專纍。
欷聲甚悲。文甚憐之。身行丐得食。將食病兒。兒業已死。
群兒返乃疑文殺之。相與搏逐文。文夜匍匐入里中舍。驚舍中犬。舍主得文縛之。
文呼曰。吾避仇。非敢爲盜。如翁不信。朝日辨於市。
辭甚樸。舍主心知廣文非盜賊。曉縱之。文辭謝請弊席而去。舍主終已恠之。
踵其後。望見群丐兒曳一尸。至水標橋。投尸橋下。文匿橋中。
裹以弊席。潛負去。埋之西郊之墦間。且哭且語。於是舍主執詰文。
文於是盡告其前所爲及昨所以狀。舍主心義文。與文歸家。予文衣。厚遇文。
竟薦文藥肆富人作傭。保久之。富人出門。數數顧。還復入室。
視其扃。出門而去。意殊怏怏。旣還大驚熟視文。欲有所言。
色變而止。文實不知。日默默亦不敢辭去。旣數日。富人妻兄子持錢還富人曰。
向者吾要貸於叔。會叔不在。自入室取去。恐叔不知也。於是富人大慚廣文。
謝文曰。吾小人也。以傷長者之意。吾將無以見若矣。於是遍譽所知諸君及他富人大商賈。
廣文義人。而又過贊廣文諸宗室賓客及公卿門下左右。公卿門下左右及宗室賓客。皆作話套。以供寢數月間。
士大夫盡聞廣文如古人。當是時。漢陽中皆稱廣文。前所厚遇舍主之賢能知人。而益多藥肆富人長者也。
時殖錢者。大較典當首飾璣翠衣件器什宮室田僮奴之簿書。參伍本幣以得當。然文爲人保債不問。當一諾千金。
文爲人貌極醜。言語不能動人。口大幷容兩拳。善曼碩戱。爲鐵拐舞。
三韓兒相訾傲。稱爾兄達文。達文又其名也。文行遇鬪者。文亦解衣與鬪啞啞。
俯劃地若辨曲直狀。一市皆笑。鬪者亦笑。皆解去。文年四十餘。
尙編髮。人勸之妻則曰。夫美色。衆所嗜也。然非男所獨也。
唯女亦然也。故吾陋而不能自爲容也。人勸之家則辭曰。吾無父母兄弟妻子。何以家爲。
且吾朝而歌呼入市中。暮而宿富貴家門下。漢陽戶八萬爾。吾逐日而易其處。不能盡吾之年壽矣。
漢陽名妓窈窕都雅。然非廣文聲之。不能直一錢。初羽林兒各殿別監駙馬都尉傔從垂袂過雲心。心名姬也。
堂上置酒皷瑟。屬雲心舞。心故遲不肯舞也。文夜往彷徨堂下。遂入座。
自坐上坐。文雖弊衣袴。擧止無前。意自得也。眦膿而眵。
陽醉噎。羊髮北髻。一座愕然。瞬文欲敺之。文益前坐。
拊膝度曲。鼻吟高低。心卽起更衣。爲文釖舞。一座盡歡。
更結友而去。
余年十八時。甞甚病。常夜召門下舊傔。徵問閭閻奇事。其言大抵廣文事。
余亦幼時。見其貌極醜。余方力爲文章。作爲此傳。傳示諸公長者。
一朝以古文辭。大見推詡。葢文時已南遊湖嶺諸郡。所至有聲。不復至京師數十年。
海上丐兒。甞乞食於開寧水多寺。夜聞寺僧閒話廣文事。皆愛慕感嘆。想見其爲人。
於是丐兒泣。衆恠問之。於是丐兒囁嚅。遂自稱廣文兒。寺僧皆大驚時甞予飯瓢。
及聞廣文兒。洗盂盛飯。具匙箸蔬醬。每盤而進之。時嶺中妖人。
有潛謀不軌者。見丐兒如此其盛待也。冀得以惑衆。潛說丐兒曰。爾能呼我叔。
富貴可圖也。乃稱廣文弟。自名廣孫以附文。或有疑。廣文自不知姓。
生平獨。無昆弟妻妾。今安得忽有長弟壯兒也。遂上變。皆得逐捕。
及對質驗問。各不識面。於是遂誅其妖人。而流丐兒。廣文旣得出。
老幼皆往觀。漢陽市數日爲空。文指表鐵柱曰。汝豈非善打人表望同耶。今老無能矣。
盖望同其號也。因相與勞苦。文問靈城君,豐原君無恙乎。曰皆已下世矣。金君擎方何官。
曰爲龍虎將。文曰此兒美男子。軆雖肥。能挾妓超墻。用錢如糞土。
今貴人不可見矣。粉丹何去。曰已死矣。文嘆曰。昔豐原君夜讌麒麟閣。
獨留粉丹宿。曉起將赴闕。丹執燭。誤爇貂帽惶恐。君笑曰。
爾羞乎。卽與壓羞錢五千。吾時擁首帕副裙。候闌干下。黑而鬼立。
君拓戶唾。倚丹而耳曰。彼黑者何物。對曰。天下誰不知廣文也。
君笑曰。是汝後陪耶。呼與一大鍾。君自飮紅露七鍾。乘軺而去。
皆昔年事也。漢陽纖兒誰最名。曰小阿。其助房誰。曰崔撲滿。
曰朝日尙古堂遣人勞我。聞移家圓嶠下。堂前有碧梧桐樹。常自煑茗其下。使鐵突皷琴。
曰鐵突昆弟方擅名。曰然。此金鼎七兒也。吾與其父善。復悵然久之曰。
此皆吾去後事耳。文斷髮猶辮如鼠尾。齒豁口窳。不能內拳云。語鐵柱曰。
汝今老矣。何能自食。曰家貧爲舍儈。文曰。汝今免矣。
嗟呼。昔汝家貲鉅萬。時號汝黃金兜。今兜安在。曰今而後吾知世情矣。
文笑曰。汝可謂學匠而眼暗矣。文後不知所終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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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 사람의 이름을 만드는가
광문에게 생기는 믿음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집주인은 그의 꾸밈없는 말을 듣고 도둑이 아니라고 믿어 풀어 줍니다. 뒤이어 죽은 아이를 묻어 주는 행동을 직접 보고 사정을 들은 뒤에는 그를 집으로 데려가 돕고 일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광문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장면마다, 평가하는 사람이 무엇을 직접 보았고 무엇을 남에게 들었는지 구분해 보세요.
광문의 명성은 선행만으로 저절로 퍼지지 않습니다. 약방 주인의 미안함과 칭찬, 상인들의 대화, 높은 집안의 소문이 연결됩니다. 이렇게 생긴 믿음은 담보 없이 돈을 빌릴 수 있게 할 정도의 사회적 힘이 됩니다. 작품은 한 사람의 성품과 그 사람의 이름이 유통되는 과정을 함께 보여 줍니다.
후일담에서는 같은 명성이 다른 사람에게 이용됩니다. 좋은 평판이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새 이야기를 낳아 위험을 만들기도 합니다. 앞부분의 오해가 풀리는 과정과 뒤의 누명이 벗겨지는 과정을 비교해 보세요. 늙은 광문과 옛 지인의 대화에는 그 사이 흘러간 시간과 달라진 도시의 모습도 함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