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 한문 단편

양반전兩班傳

양반이라는 신분을 거래하려고 증서를 씁니다. 문서의 내용이 바뀌는 동안 드러나는 체면과 특권을 함께 읽습니다.

정선 고을의 가난한 양반과 돈은 많지만 천대받는 부자가 신분을 거래하려 합니다. 군수가 두 차례 작성하는 증서를 따라가면, 양반이라는 이름 안에 서로 다른 기대가 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래 이야기는 한문 원문의 주요 장면을 현대 한국어로 다시 서술한 것입니다.

박지원 · 연암집 권8약 8분입문
신분체면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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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리안 쉽게 읽는 고전

양반전

한문 원작을 바탕으로 AI의 도움을 받아 새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공식 번역이나 문장별 대역이 아니며, 원문의 세부 표현은 한문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선 고을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양반이 살았다. 새 군수가 부임하면 몸소 그의 집을 찾아 예를 갖출 만큼 존중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살림은 가난했다. 해마다 관청의 곡식을 빌려 먹다가 갚지 못한 양이 천 석에 이르렀다. 고을을 순시하던 관찰사는 장부를 보고 크게 노했다. 양반이라는 사람이 나라의 곡식을 축내고 있으니 가두라는 명이었다. 군수는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겼지만 대신 갚아 줄 방법도 없었다.

양반은 밤낮으로 울며 걱정했다. 아내는 평생 책을 읽어도 관청에서 빌린 곡식조차 갚지 못한다면 양반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나무랐다. 한편 같은 마을의 부자는 다른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돈이 많아도 늘 낮은 사람으로 대접받았다. 양반을 만나면 말을 타지도 못하고 몸을 굽혀야 했다. 부자는 가난한 양반이 지금의 신분을 지키기 어려울 만큼 곤란해졌으니, 그 신분을 자신이 사면 어떨까 생각했다.

부자는 양반을 찾아가 관청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했다. 양반은 기뻐하며 거래를 받아들였다. 부자가 곡식을 바치자 군수는 놀라서 양반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양반은 평소와 달리 짧은 옷을 입고 길에 엎드려 자신을 낮추었다. 군수가 까닭을 묻자, 그는 이미 양반의 지위를 팔았으니 예전 이름을 더는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그 마을의 양반은 빚을 갚아 준 부자라는 것이다.

군수는 부자가 재물을 아끼지 않고 남의 어려움을 도왔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말로만 거래하면 뒤에 다툼이 생길 수 있으니 증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고을의 선비와 농민, 장인과 장사꾼들이 관청 뜰에 모였다. 부자는 높은 자리에 앉고 예전 양반은 아래에 섰다. 군수는 곡식 천 석을 값으로 양반을 판다는 사실과, 양반이 지켜야 할 일을 적기 시작했다.

첫 증서에는 양반다운 몸가짐이 빼곡히 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굶주리거나 추워도 가난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아야 했다. 걸음은 느긋하게 옮기고, 손으로 돈을 만지거나 쌀값을 물어서도 안 되었다. 더워도 맨발을 드러내지 말고, 밥을 먹을 때에는 소리를 삼가야 했다. 가족과 하인에게 함부로 주먹질하거나 욕하는 일, 소를 잡고 노름하는 일도 금했다. 이런 조항을 어기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서 바로잡도록 했다.

증서를 다 읽자 부자는 한참 동안 실망한 얼굴로 있었다. 그가 상상한 양반의 삶은 신선처럼 편안한 것이었는데, 문서에는 번거로운 규칙만 늘어서 있었다. 부자는 양반이 되는 이익을 알 수 있도록 내용을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군수는 두 번째 증서를 썼다. 농사와 장사를 하지 않아도 글을 조금 익혀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고, 과거에 합격한 증서는 온갖 재물을 불러오는 주머니가 된다고 적었다.

두 번째 증서는 점점 더 노골적이 되었다. 벼슬하지 못하고 시골에 사는 양반도 이웃의 소를 먼저 끌어다 밭을 갈게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 밭의 김을 매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감히 양반에게 거역하겠느냐며, 따르지 않는 사람을 욕보여도 원망조차 드러내기 어렵다고 했다. 처음의 점잖은 몸가짐 대신, 남의 노동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특권이 증서 위에 나타났다.

부자는 끝까지 듣지 못하고 그만두라고 했다. 그런 양반이 되라는 것은 자신을 도둑으로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는 죽을 때까지 양반이 되는 일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거래를 위해 쓰기 시작한 문서가, 마침내 거래하고 싶던 신분의 속사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끝
낯선 말 풀이 4개
양반
조선 사회의 지배적 신분층을 가리키는 말. 작품에서는 그 지위의 의미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됩니다.
환곡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거두어들이던 제도. 작품 속 양반의 빚과 관련됩니다.
군수
군 단위 고을을 다스리던 지방 관리.
문권
권리나 약속을 증명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이 작품의 출처

박지원 · 《연암집 권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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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데이터포털 「한국문집총간_연암집(燕巖集)」 공개자료(2020-04-08, 이용허락범위 제한 없음)를 확인했습니다. 현대어 재구성과 해설은 미코리안에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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